전고운 감독 "'소공녀'는 현시대의 부조리함에 대한 분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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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7
[티브이데일리 공미나 기자] 도시에서 집 없이 산다는 것이 가능할까. 좋아하는 것을 위해 서울에서 집을 포기한다는 독특한 이야기로 공감과 함께 씁쓸함을 주는 영화가 있다. "1억도 모으기도 힘든 세상에서, 그 1억으로 서울에서 집 한 채 구하기 힘든 현실"이라는 전고운 감독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소공녀'는 그의 이야기이자 지금 이 시대의 이야기다.
22일 개봉하는 영화 '소공녀'(감독 전고운·제작 광화문시네마)는 프로 가사 도우미로 살아가는 미소(이솜)가 일당 빼고 다 오르는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들 대신 집을 포기하고 대학 시절 함께 밴드 활동을 한 친구들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전고운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자, 그가 대표로 있는 광화문시네마의 네 번째 작품이다.
30대 전고운 감독은 지금까지 살아오며 갖게 된 여러 가지 느낌과 생각들을 한데 모아 '소공녀'를 완성했다. 가장 먼저 영화의 주제가 되는 비싼 집값은 전고운 감독이 실제 서울에서 집을 구하던 경험에서 출발했다. 그는 "'소공녀'는 제가 30대까지 살아오며 겪은 부조리함에 대한 분노다. 힘들게 취업해도 돈을 모으기 힘들고, 힘들게 돈을 모아도 집을 사기 힘들다"며 잘못된 사회 구조에 대해 비판했다. 이 밖에도 전고운 감독은 여성으로서 한국 사회를 살아오며 느낀 점, 좋아하던 친구들과 자연스레 흩어질 수밖에 없는 30대의 삶 등을 묶어 '소공녀'를 써 내려갔다.
이처럼 영화가 경험에서 비롯된 만큼 극 중 미소가 겪는 고통들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20대부터 넓게는 40대까지 겪고 있는 고통이다. 때문에 각종 영화제에서 '소공녀'를 미리 접한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자신의 이야기라 느끼며 '힐링'을 받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고운 감독은 '소공녀'를 '힐링' 영화로 생각한 적이 없다고. 그는 "다들 보시고 위로를 받았다고 하는 이유는 다들 미소와 같이 살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고 싶은데 못하고 사니까 공감을 통해 위로를 받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니까 씁쓸함도 동시에 발생하는 게 아닌가"라고 이야기했다.
영화를 얘기하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주인공 미소의 설정이다. 미소라는 캐릭터는 지나치게 독특해서 자칫 평범한 시각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상징적인 의미들을 이해한다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먼저 미소가 집을 포기할 만큼 좋아하는 위스키와 담배, 남자친구. 이에 대해 전고운 감독은 "담배와 위스키는 이 지독히 춥고 힘든 현실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살려면 어딘가에 취해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모두들 어딘가 중독돼 산다. 그런데 취향에도 서열을 정하더라. 술 담배가 실제로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쉽게 '끊어'라고 말한다. 또한 술 담배는 성인만이 할 수 있다. 저는 '소공녀'가 성인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로 매력적인 소재다"라고 설명했다. 또 "사랑은 누구나 하고 싶거나 하고 있고, 제가 생각했을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미소는 사랑이 많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위스키와 담배를 제외한 미소의 고정지출 중 또 다른 한 가지 항목은 약값이다. 극 중 미소는 흰머리가 자라나는 병이 있는데, 이 때문에 매일 약을 섭취한다. 전고운 감독은 "현대인들 다들 육체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어딘가 병을 안고 산다"며 흰머리는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병이라고 했다. 이어 "미소는 희귀한 사람이다. 흰머리는 그런 미소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눈으로 보여준다. 또 미소를 연기한 이솜 배우가 워낙 어려 보이기도 해서 흰머리로 나이가 들어 보이는 효과를 줬다"고 말했다.
미소가 가사도우미를 업으로 삼은 설정도 독특한데, 전고운 감독은 이에 대해 설명하며 미소의 전사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미소는 사실 회사 생활도 했고, 푸드 트럭도 해봤다. 회사에서 성희롱도 당하고, 일도 안 맞아서 빠르게 판단하고 포기했다고 설정했다"며 특히 영화 속 미소의 금전함에는 푸드 트럭에 대한 힌트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가사도우미는 여성들이 일용직으로 구할 수 있는 가장 흔한 직업이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분들이 주로 한다. 이 나이 대 젊은 친구가 일용직 가사도우미를 한다는 것 자체가 '엣지'있다고 생각했다. 청소라는 것이 참 중요한데 하찮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중요성을 모르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저는 청소라는 노동을 존경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궁금증이 생길 수 있는 지점이 하나 있다. 미소의 남자친구 한솔은 웹툰 작가라는 '꿈'이 있지만, 미소는 특정한 '꿈'이 없다. 사실 전고운 감독은 '꿈'을 넣지 않아 시나리오를 쓸 때 더 힘들었다고. 그는 "'꿈'이라는 플롯을 가져오면 훨씬 쉽다. 원하는 꿈 정하고 장애물 주고, 곡선을 그리면 된다. 그런데 그런 영화는 많이 보지 않았나. 너무 많은 성장 영화가 있다. '꿈'에 대해, 사는 것에 대해 좀 더 심플하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 돌아왔다"고 털어놨다.
이어 "'꿈'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전고운 감독은 "사람들이 말하는 정형화된 '꿈'에 대한 정의가 공감이 안 되더라. 순간순간이 유일한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제 주변에도 '내 꿈은 이거야'라고는 사람을 잘 보지 못했다. 늘 기분 좋을 대로 산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실은 이렇게 살기 힘들고 안정을 강요하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자꾸 꿈을 가르치는 게 이상하다. '그럼 꿈은 가져야 하는 건가?'라고 생각하고 살다가, 현실은 그저 취직을 강요한다. 그러다 보니 '배운 걸 이루지 않고 사는 나는 문제가 있나'라고 자괴감을 안겨준다. 그런 구조가 이상하다. 그냥 잘 사는 것, 그게 꿈일 수 있지 않나"라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전고운 감독이 이런 미소를 통해 갑갑한 현실에 얽매이지 않은 인물을 보고 싶어 했다. 그는 "나는 집을 사기 위해 이것을 못하고, 저것을 참고 살았다. 주변의 친구들도 다 그렇게 살았고 우울해한다. 미소를 통해 이런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난 하고 싶은 대로 할래. 계속할래' 이런 사람을 보고 싶었다. 미소는 저를 위한 인물이었다"며 미소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고 스스로 위로를 받고 있었다.
또한 '소공녀' 전반에 담긴 도시의 모습은 전고운 감독이 느낀 서울이었다. 경상북도 울진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는 그는 "저에게는 서울 자체가 꿈이었다. 출세의 상징. '인 서울'이란 말이 있지 않나. 서울은 한국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계급이 높은 도시다. 그래서 서울에 와서 살아보니 많은 게 느껴지더라"라며 도시 생활에 대해 느낀 점들을 이야기했다.
이처럼 독특하고 흥미로운 작품 이야기를 듣자니 전고운 감독의 차기작이 궁금해졌다. 그러나 그는 차기작에 대해 묻자 "아직은 없다"고 단칼에 답했다. 이어 "저는 즉흥적이다. 뭔가 쌓인 것에서 오는 즉흥이 있다"고 자신을 표현했다. 그렇지만 한 가지 계획은 확실했다. 그는 "저는 여성 캐릭터에 관심이 많다.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미소와 같은 또 다른 의미 있는 여성 캐릭터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