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1만 돌파 독립영화 ‘족구왕’ 감독 우문기 “깔깔 웃는 공감으로 짓눌린 청춘들 그려”
서울 4년제 대학 식품영양학과를 다니는 24살 홍만섭. 막 복학한 그는 토익점수 하나 없는 허접한 스펙에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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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4년제 대학 식품영양학과를 다니는 24살 홍만섭. 막 복학한 그는 토익점수 하나 없는 허접한 스펙에 학자금 대출을 받아 근근이 학교를 다녀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앞날이 위태로운 그가 복학 후 학교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도서관이 아닌 ‘족구장’이다. “공무원시험이나 준비해라”라고 하는 기숙사 룸메이트 선배의 말이나 “여자들이 족구하는 복학생 제일 싫어해요”라는 여학생의 말에도 그는 개의치 않고 족구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다. 만섭이는 없어진 족구장을 되찾기 위해 서명운동을 벌이고, 족구대회에 나가기 위해 밤낮없이 연습에 매진한다. “대체 왜?”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씩 웃으며 “그냥 좋으니까요”라고 답한다.
지난 21일 개봉한 영화 <족구왕>은 개봉 일주일 만인 27일 독립영화로서는 ‘대박’의 기준이라고 하는 1만 관객을 넘겼다. 40여개밖에 되지 않는 개봉관과 적은 마케팅 비용을 감안하면 엄청난 흥행속도다. 26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의 한 카페에서 영화감독 우문기(31·사진)를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들이 <족구왕>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대학생들의 삶을 실제와 같이 다루면서도 ‘20대 패배주의’로 빠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화는 공무원시험, 학자금 대출, 스펙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의 삶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를 ‘족구’를 중심으로 한 유쾌한 웃음 속에 부담스럽지 않게 녹여냈다. 우 감독은 “처음에는 시나리오가 지금보다 훨씬 무거웠다”고 말했다. 여주인공의 자살, ‘엄친아’인 한 남자와 주인공 만섭이의 신분 격차 등 무거운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쓴 김태곤 감독과 상의하고 각색하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훨씬 가벼워졌다. “원래 일본 영화 <워터보이즈>처럼 가볍고 재미있는 영화를 좋아해요. 또 20대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것이 청춘이다’ 식으로 가르치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깔깔 웃으면서 보고 난 후에 ‘아…’ 하면서 뭔가 느낄 수 있게 하는, 그런 느낌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가르침보다도 웃음과 공감이 먼저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인공 만섭이는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긍정적이고 발랄하다. 우 감독은 “처음부터 만섭이는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그리고자 했다”며 “매우 고무적이고 진취적이며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그냥 하는 사람이었으면 했다”고 말했다. 이어 “만섭이가 갑자기 캠퍼스에 나타나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며 족구를 하는데 처음에는 그를 이상하게 보던 사람들까지 조금씩 변하고 주변이 정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만섭이를 ‘미친 놈’처럼 생각하던 학생들은 만섭이로 인해 족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넘어 어느새 그를 응원한다.
영화는 2000년대 이후 대학을 다닌 젊은이들이 공감할 만한 요소들로 가득하다. 주인공 만섭이의 모습은 ‘복학생’ 그 자체다. 그는 세탁하기 쉬운 아웃도어 브랜드 점퍼에 등산가방을 메고 등장한다. 가방의 한쪽 주머니에는 물통이, 다른 쪽 주머니에는 우산이 꽂혀 있다. 우 감독은 “복학생들은 군대에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훈련들을 하다보니 그것이 몸에 배어 있다”며 “비가 올 수도 있으니 우산을, 목이 마를 수도 있으니 수통을 차고 다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복학생들이 아웃도어 브랜드를 즐겨입는 이유에는 “무스 바르고 멋 부리는 건 신입생 때나 하는 짓이라 생각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기능성 의류를 입는 것이 아닐까”라며 웃었다.
사실 <족구왕>의 만섭이는 우 감독의 삶과 닿아 있다. <족구왕>의 제작사인 ‘광화문 시네마’는 우 감독을 비롯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동기 6명이 모여서 만든 영화 공동체에서 시작했다. 휴학 후 마음 맞는 동기들이 작업실에 모여 영화나 만들어보자는 마음에서 뭉쳤다. 이 공동체는 지난해 <1999, 면회>가 극장에 걸리면서 광화문 시네마라는 정식 영화사로 등록했고, 올해 <족구왕>까지 두 편의 영화를 내놨다. 광화문 시네마의 일원들은 정해진 역할 없이 서로의 영화에서 시나리오 작업, 제작 PD, 미술감독 등을 맡아주면서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고 있다. 우 감독은 “<족구왕>도 술자리에서 각본을 쓴 김태곤 감독이 ‘네가 연출 한번 할래?’라고 제안했는데 재밌을 거 같아 수락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만섭이처럼 조용히,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우 감독은 말한다. “물론 20대들이 힘든 점도 있죠. 하지만 ‘88만원 세대’ 등 어른들이 씌운 멍에와 같은 시선에 눌려 사실은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은 상황에서도 눈치를 보는 면이 있는 거 같아요. 사실은 좀 쓸데없는 짓을 해도 되는 건데 말이에요. 하고 싶은 말은… 영화에서 가게 사장님도 그러잖아요. ‘젊어서 마음껏 놀아. 벌벌 떨지 말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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