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MV

DIGIPEDI(디지페디) | 그들이 만든 세상

blue & grey 2018. 4. 2.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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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페디(DIGIPEDI(Digital Pedicure))는 뮤직비디오와 바이럴 비디오를 비롯한 다양한 영상물을 만드는 오로시(OROSH)와 원모어타임(1MORETIME) 두 명의 남자로 구성된 팀이다. 이승환의 ‘Good Day II’, 이적의 ‘그대랑’, 다이나믹 듀오의 ‘복잡해’, 김형준(SS501)의 ‘oH! aH!’ 뮤직비디오가 바로 그들 솜씨. 디지페디의 유머와 판타지, 초현실주의와 키치적인 요소로 구성된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는 것보다 그들의 영상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게 그들을 느낄 수 있는 제일 빠른 지름길일 것이다. 어려울 것도 없다. 클릭 한방이면 된다. www.digipedi.com 

 

뮤직비디오에서 표현하고 있는 이미지들을 두 분의 취향으로 봐도 될까요?
OROSH ―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거 같아요.
1MORETIME ― 그게 좋은 거 같아요.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거.

 

판타지적이고 공상적이고 유머러스한, 맞나요?
OROSH ― 유머러스하다는 게 가장 맞는 거 같아요. 개그맨은 말과 몸으로 웃기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영화적인 장치로, 저희는 뮤직비디오로 유머를 표현한다고 생각해요.
1MORETIME ― 기본적으로 항상 유머와 농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시각적인 재미, 시각적인 농담이랄까.

 

사람 얼굴에 부엉이 가면을 씌우고, 가방을 씌우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 거예요? 왜 자꾸 씌워요?
OROSH ― 사람의 얼굴을 통해 감정이 직접적으로 들어나면 왠지 모르게 손발이 오글거려요.
1MORETIME ― 일종의 취향인 거 같아요. 예를 들어 촬영할 때 배우한테 연기를 아예 안 시키거든요. 배우가 연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배우의 연기가 보이는 것보다 어떤 고정된 이미지가 보여지길 바래요. 그래서 주로 어떤 동작이나 한 가지 표정을 요구해요. 몰랐는데 저희가 다른 감독들에 비해 배우나 스탭을 통제하는 편이라고 그러더라구요. 미리 머릿속에 짜놓은 그림을 가지고 진행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원하는 게 있어요.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감정이 직접적으로 들어나야 감정몰입이 쉽잖아요.
OROSH ― 그건 맞아요. 그런데 직접적으로 우는 게 보여서 나도 슬프다 이런 식의 연출을 별로 안 좋아해요. TV를 보면 관객들이 우는 모습을 보여주잖아요. 우는 모습이 정서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건 맞는데 너무 1차원적인 거 같아요. 그보다 우리가 전하는 이미지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뮤직비디오를 보면 손이 정말 많이 가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힘들지 않아요?
OROSH ― 그게 저희가 가진 기술력의 전부이기 때문에. (웃음)
1MORETIME ― 간단하게 결과물이 나오는 게 아니라 손이 많이 가고 공을 많이 들이면 그만큼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디지털 작업이어도 손맛이라는 게 있어서 단순히 이펙트를 넣는 것과 직접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작업하는 건 달라요. 확실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결합시키면 색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거 같아요.

 

작업은 어떤 식으로 분리해요?
OROSH ― 아이데이션은 같이 하고 각 프로젝트마다 한 명이 메인 작업자로 붙고, 나머지 한 명이 서포트를 하는 식으로 진행해요. 외주가 필요하면 맡기기도 하고.

 

디지페디가 추구하는 스타일이 있어요?
1MORETIME ― ‘디지페디의 스타일은 이거다’라고 규정짓고 싶지 않아요. 이렇게도 해보고 싶고, 저렇게도 해보고 싶고 다양하게 시도해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런 건 있어요. 우리는 의도한 게 아닌데 몇 십 편의 뮤직비디오를 만들다보니까 자연스럽게 디지페디 스타일이라고 얘기하는 부분들이 나오는 거 같아요.
OROSH ― 의뢰가 들어오는 과정을 보면 어떤 스타일 때문이라기보다 독특하게 한다는 얘기를 듣고 왔다는 분들이 많아요. 천편일률적인 건 우리와 거리가 먼 거 같아요. 일이 점점 커지면서 메이저 느낌을 따라야 하나 잠시 고민도 했었는데, 지금은 아예 우리식으로 다르게 가려고 해요.
1MORETIME ― 그런데 뮤직비디오는 기본적으로 음악이 있고, 그걸 따라가는 거니까 만약에 소녀시대 뮤직비디오를 맡으면 소녀시대가 갖고 있는 발랄하고 소녀 같은 감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뮤지션이 있어요?
1MORETIME ― 소녀시대요. (웃음) 스타일과 댄스를 보여주는 거 말고 다른 방식으로 찍어보고 싶어요. 얼마 전에 루드 페이퍼 뮤직비디오를 만들면서 걸그룹 뮤직비디오를 이런 식으로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외계인도 나오고, 유머도 들어가면 좀 더 크리에이티브하면서도 재미있을 거 같아요. 예쁘게도 보일 것도 같고.
OROSH ― 저는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 좋아하는 뮤지션이에요. 해외 뮤지션과 작업해보고 싶어요. 일을 준 사람, 일을 하는 사람 말고 아티스트 대 아티스트로. 예전에 어떤 작곡가가 자기 머릿속에 있는 걸 그대로 찍어달라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 식의 방식은 재미가 없거든요.
1MORETIME ― 그거 안 했어요. 근데 그 노래가 대히트를 했어요. (웃음)
OROSH ― 아무리 그래도 안 찍길 잘한 거 같아요.

 

두 감독님께 영향을 미친 무언가가 있다면요?
OROSH ― 미술학원 원장 선생님이 생각나네요. 우상이었고, 닮고 싶은 사람이었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자기 그림도 그리셨는데 엄청 큰 캔버스를 검은색으로 다 칠한 다음에 목탄 지우개로 바다를 사실적으로 그리셨어요. 장인 같은 느낌이었죠. 선생님을 보면서 최고가 되고 싶다, 1인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1MORETIME ― 부모님께서 취미로 그림을 그리시거든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그 영향으로 시각적인 걸 하게 된 거 같고, 중학교 때 저희 집에 채널브이(Channel V)가 나왔거든요. 엄청 좋아했어요. 그때부터 뮤직비디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대학 때는 영화 동아리에서 영화를 만들었어요. 22살 때까지 독립영화 연출부로 일하기도 했구요. 영향을 준 아티스트는 너무 많죠.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나 박찬욱, 홍상수 등등.

 

오로시 감독님은 지금 일 하기 전에 어떤 일 하셨어요?
OROSH ― 디자인쪽 일을 했었어요. 대학 때는 흑인음악을 좋아했어요. 그때가 힙합의 부흥기였거든요. 흑인음악동아리에서 공연도 했었어요. 지금 활동하고 있는 리얼드리머, 양갱, DJ 프리키가 그때 멤버였어요. 랩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함께 팀을 만들었는데 “너는 비주얼 디렉터야” 그러는 거예요. ‘아, 남들이 볼 때 내가 랩보다는 이쪽에 더 소질이 있어 보이나 보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고민하다가 랩을 관뒀죠. 전공을 살려서 디자인 작업을 했어요. 그러다가 음악 하는 친구들 영상을 조금씩 찍게 됐고 지금에 오게 됐죠.

 

보통 영상 하는 친구들을 보면 최종 종착지가 영화더라구요. 두 분은 어때요?
1MORETIME ― 그렇지는 않아요. 영화를 만들어볼 수는 있겠지만 저랑은 안 맞는 거 같아요. 영화 한 편을 만들려면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몇 년씩 걸리잖아요. 소모적인 거 같아요. 재미도 없고. 짧으면서도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이 나올 수 있고, 크리에이티브한 게 뭐가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그리고 혼자 소규모로 일할 수 있는 것.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제일 큰 게 뮤직비디오인 거 같더라구요. 뮤직비디오를 만들다 유명해지면 영화를 해야지 하는 생각은 없어요.
OROSH ― 저 역시도 영화가 종착지는 아니에요.

 

뮤직비디오 시장이 예전 같지가 않아요.
OROSH ― 뮤직비디오는 음악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뮤직비디오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음악 산업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어요. 음악 1곡이 껌값 보다도 싼 500원에 소비되는 세상이에요. 그런 상황 속에서 뮤직비디오에 대한 의미가 주어질리 없죠.
1MORETIME ― 컨텐츠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고, 영상을 공들여 작업할 만한 동기가 주어졌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한 달 홍보하고 버려지는 상품과 그 광고물이 아니라 공들여 만든 음악을 돋보이게 하는 컨텐츠로서 인식되어야 해요. 그래야만 뮤직비디오 시장도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고, 합리적인 시장구조가 형성될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 가장 깊게 생각하는 화두는 뭐예요?
1MORETIME ― 건강이요. 진짜 중요한 거 같아요. 예전에 아는 선배가 “디렉터는 체력이야” 이러면서 맨날 운동을 했었는데 이제 그 말이 이해가 돼요. 내 몸이 힘들지 않고 팔팔해야 재밌는 생각도 들고 작업도 수월해지는 거 같아요.
OROSH ― 저도 건강이요. 이쪽 일이 외부에서 볼 때는 연예인이랑 작업하니까 재미있고, 자유스럽고, 현장 분위기도 화기애애할 거 같은데 이것도 일이거든요. 새벽부터 준비해서 이 팀, 저 팀 체크해야 되고,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게 생기면 감독 책임이에요. 근데 감독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일이 잘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연기해야 되거든요. 나만 믿고 따르라는 선장처럼. 그러다보면 일은 늘 새벽에 끝나요. 거의 체력 싸움이죠.

 

미래의 그림은 어떤 모습이에요?
OROSH ― 입신양명(立身揚名)이라고 하죠? (웃음) 1인자가 되어야죠. 물론 좋은 작업이 바닥에 깔려야 가능한 얘기라고 생각해요. 작업을 더 열심히 해야죠. 저희가 뮤직비디오 작업만 하는 건 아니거든요. 물론 주된 작업이 뮤직비디오이긴 하지만 CF도 만들고, 온라인이나 키오스크에 들어가는 영상도 만들어요. 영상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작업들을 진행하고 싶어요. 그리고 시일 내에 스케일이 큰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공원 전체를 천으로 덮어버린다든지, 큰 조형물을 세운다든지, 넓은 곳에 영상을 쏜다든지. (웃음)
1MORETIME ― 해외의 좋은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생뚱맞을 수도 있는데 나이키 월드컵 광고를 연출해보고 싶어요. 월드컵 시즌의 나이키 광고는 그 시대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 디렉터가 하는 작업이거든요. 꼭 해보고 싶어요. 결국 입신양명이네요. (웃음)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주세요.
1MORETIME ― 파운드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좀 더 과감해져야 되지 않나 싶어요. 인디 음악하는 친구들이 어설프게 타협점을 찾는 게 저는 별로 안 좋아 보이더라구요. 영상으로 만들려고 하는 음악은 대중가요에 가까운 음악이에요. 조금 더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요즘 잡지들도 보면 매호가 똑같은 거 같아요. 천편일률적인 거 재미없잖아요. 더 과감한 시도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해요.
OROSH ― 저도 비슷한 얘긴데 예전에 비해 컨텐츠의 숫자도 많아지고 잘하는 사람도 더 많아졌는데, 반대로 저 퀄리티도 많아진 거 같아요. 그리고 그게 좋다고 따라다니는 사람들도 많아졌어요. 전반적인 문화 수준이 오히려 예전보다 더 떨어진 느낌이에요. 그리고 대중도 그렇고, 만드는 사람도 그렇고 쉬운 것만 취하려고 해요. 딱 보고 “하하하 좋네, 즐겁네” 이런 것들이 많아진 거 같아요. 소비성, 일회성 말고, 좀 더 느끼고 고민하고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만드는 사람이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만들어야지 보는 사람, 듣는 사람의 수준도 올라간다고 생각해요.